여행/한국

로망스투어 당일 버스여행(4) 청주시내투어 그림책정원

케이티웨이 2026. 7. 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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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투어는 속리산 법주사와 청주 운보의 집을 거쳐 마지막 코스는 청주시내 중앙공원에서 이루어 집니다 . 중앙공원근처에서 버스를 내려 전문안내원의 해설을 들으며 청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청주시내 중심에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입니다 . 국보 제41호로 지정되어 잇습니다 
 

 
 
고려 광종 13년(962년)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절의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달아두던 기둥입니다 .
원래는 철통 30개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재는 20개만 남아서 철당간의 높이는 약 12.7미터 입니다 
 

 
 
철당간을 지지하는 두개의 석조 지주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으며 높이는 4.2미터 입니다 
 

 
절에 깃발을 걸어두는 철당간은 현재 3개만 남아 있으며, 그중 국보로 지정된 곳은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뿐입니다 . 이는 철통에 만든 시기와 유래가 철통에 양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고려 광종 13년에 세워졋으며, 김예종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부처님께 맹세하고 세운 기록이 철통에 남아 잇습니다 
 

 
 
 
 

 
 광장 한켠에 서잇는 진또배기 조형물입니다. 진또배기는 강원도 영동 지방(특히 강릉 지역)의 사투리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세우는 솟대를 의미합니다. [출처] 진또배기란?|작성자 천변만화

 

솟대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대부분 오리가 많아요. 왜 솟대 위에 오리를 앉힌 걸까요? 오리가 가진 어떤 특징 때문이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오리가 닭보다 크고 무거운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풍요를 가져오는 새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하늘과 땅·물을 오가며 잠수까지 하는 생활 모습을 보고, 오리는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를 모두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또, 먼 곳으로 여행하는 철새라는 성질은 인간 세상과 신이 사는 세계를 이어주는 심부름꾼으로 인식되었어요. 그밖에도 물새이기 때문에 불이 나는 것을 막아준다고 생각되기도 하지요.  
 

 
 
용두사지 철당간을 중심으로 좌우 사방으로 길을 넓혀 광장을 만들어 청주의문화재 보호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앙공원으로 걸어서 이동하는 도중 젊은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가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주말오후에 상가가 모두 한산한 데
이곳만 사람이 즐서 있습니다 

 
요즘 핫한 청주의 쫄쫄호떡입니다 . 마치 호떡집에 불난 모습입니다.

 
중앙공원 곳곳에 역사적 유물이 남아 잇습니다 
 

 
 
 
 
 

 
척화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온 백성에게 서양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고자 1871년 4월부터 서울과 전국의 교통요지에 세운 비석이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에 세운 것이다.
청주 척화비는 원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 신충구(申忠求)의 집 앞 길가의 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1976년 2월 29일에 정찬일(鄭燦日)이 발견해 현재 위치에 옮겨 놓은 것이다. 2단의 받침돌을 쌓고 그 위에 비신을 세웠는데, 비신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남아 있는 부분의 규모는 47×108×20.5㎝이며 다소 거친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풍화가 심하여 상태가 좋지 못하다.
척화비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에 청군(淸軍)이 개입해 대원군을 청나라에 납치해 가고 고종이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틈을 탄 일본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 청주 척화비도 이 때 철거당했는데,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듯 윗부분은 떨어져 나갔으며, 떨어져 나간 부분은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비문의 상태는 1행의 첫 글자인 ‘양(洋)’자와 2행의 첫 글자인 ‘즉(則)’자, 그리고 3행의 첫 글자인 ‘계(戒)’자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청주 척화비의 비문의 내용은 모두 3행으로, 1행과 2행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 則和 主和賣國]”라고 새겨 있으며, 3행은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우리들 자손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고 기록되어 있다.
 
 

 
망선루는 청주목 관아의 부속 누정으로 원래 이름은 취경루 이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으로 청주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고 이곳에 방을 써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 7년(1461)에 수리하였고 한명회가 현판을 ‘망선루’라 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무덕전(일본 헌병대 유도연습장) 신축으로 철거될 위기에 놓였으나, 김태희의 주선으로 1923년에 제일교회로 이건되었으며, 2000년 12월 중앙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나무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누각형식이다.
 

 
중앙공원 한가운데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청주 압각수는 청주 시내 중앙공원에 위치한 900살로 추정되는 은행나무이다.
압각수는 은행나무의 다른 이름 중 하나로, 은행나무 잎이 오리의 발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란 설과 혹은 나무 뿌리가 물오리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있어 생겼다는 주장에 의해 오리를 뜻하는 압(鴨)과 다리를 뜻하는 각(脚)을 써서 명명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390년(공양왕 2) 이초(李初)의 난 때 이색(李穡) 등 10여명이 청주 감옥에 갇혔는데 이 때 큰 홍수를 만나 이를 피해 청주 압각수에 올라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이들의 죄가 없음을 하늘이 증명하는 것이라 여겨 이들을 석방했다고 한다.
청주 압각수는 높이가 30m, 둘레가 8m으로 현재 줄기 중심부의 일부가 썩어 충전재를 메워준 자국이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만큼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 힘겹게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성한 가지와 잎을 가지고 있으며 가을이면 단풍이 매우 아름답게 드는 등 청주시민들의 주요 휴식공간인 중앙공원의 주요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청주 압각수는 이색(李穡) 등과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나무이며,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된다.
 

 
 
마지막으로 소개받은 전각입니다 .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忠淸道兵馬節度使營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5호

 
 

 
이곳 안쪽의 병영에서 종2품의 병마절도사가 군사업무를 주관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1층 가운대 대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습니다.

 

기둥은 높은 네모진 화강석 주초위에 세워 대문의 정중함과 안정감을 두었습니다.
2층은 우물마루를 깔고 누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는데
닭벼슬난간鷄子欄干을 설치하여 아름답게 장식 하였습니다.
원래는 충남 해미현에 있던 것으로 청주의 중요성이 확대되자
조선 효종 2년 1651에 이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중앙공원을 둘러보고 끝으로 옛충북도청을 리뉴얼해서 올해 개관한 그림책정원 1937로 갑니다 .

 
 
 
 
 

 
 
 
 
 

 
 
 
 
 

 
 
개관기념으로 정승각작가의 전시가 되고 있엇습니다 

 
 
 
 
 
 

 
 
그옛날 충청북도지사실을 기념으로 남겨 놓앗습니다 .
 
 

 
1937년 도민의 열망으로 세워진 도청이 오랜 세월에 역사의 시간을 이어오다가  2026년 열린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 났습니다 
 

 
 
 
 

 
 
열린 서가와 전시실, 정원서가등 아이들과 함께 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잘 조성되어 있엇습니다 . 
 

 
 
 
 
 
 

 
 
하루일정으로 유익한 청주시내투어를 하고 서울로 올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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